책 - 생각대로 되는 '공공디자인'
- 2012년도 학생시절
습관이 있다. 책을 읽기 전 의도치 않게 제목을 통해 내용을 예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는데, ‘생각대로 되는’이라는 수식어에서는 디자인이 나의 의도대로 착착 구상되고 만들어진다는 의미로 이해했고, ‘공공디자인’은 디자인의 한 전문적인 분야로서 일반적인 지식을 설명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생각대로 되는’은 결과물에 대한 내 생각이 어떠한지에 중점을 둔다는 의도가 담긴 수식어였고, 공공디자인은 일반적인 지식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공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의도가 담긴 단어였다. 한마디로 말해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생각이 담겨있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생각이 없는 디자인은 죽은 디자인이고, 그것은 공공디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책의 구성은 기행문과 다를 것이 없었는데, 조금 차이점이 있다면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인 의견이 비교적 많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주장이 너무 비판적이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을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불쾌감은 어느 한 쪽에 대한 찬양과 다른 한쪽에 대한 비판이 일관적일 때 나타나는 불쾌감이다. 게다가 찬양을 하는 쪽은 핀란드이고 비판을 하는 쪽은 한국인데, 이 책의 주된 독자는 한국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을 읽는 올바른 자세는 -대부분 책이 그렇겠지만- 모든 의견을 편견 없이 받아드리고 그것을 나의 객관적인 판단방식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너무 비판적인 마음가짐으로 읽게 되면 좋은 의견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고, 나의 객관적인 판단이 없이 받아들기만 한다면 분명 어느 순간에 모순이 생겨 생각이 엉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단순히 디자인에 생각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것만을 주장하지 않고 더 나아가 담긴 생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많은 생각을 하고 그 생각에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모든 말이 거기서 거기 같기도 하다. 결국은 배려다. 사람에 대한 배려다. 듣기로 스티브 잡스의 애플사가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된 이유는 뛰어난 기술력도 아니고 재력도 아닌, 올바르고 전문적인 인문학이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애플사는 사람을 위해 디자인을 한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실제로 많은 부분에서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기계를 위한 디자인을 하는 것이 현 실태다. 작가도 말했듯이, 우리나라의 디자인이 위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우리나라의 교육에 상당 부분 불만을 품고 있다. 우리는 소위 주입식교육을 많이 말하고 있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 일본이 우리 겨레의 생각을 자국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바꿔놓기 위한 계략과도 같고, 국가에 대한 국민의 생각을 조장하기 위해 행했던 군사정권의 막돼먹은 교육방침과도 같다. 말 그대로 주입식교육은 생각의 여과 없이 주입되는 것인데 이처럼 위험한 교육은 없을 것이다. 올바른 사상이란 올바른 생각의 과정이 있기에 만들어지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올바른 사상의 결과만을 가르치고 있는 형편이다.
나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라는 올바른 인성교육을 추구하는 고등학교에 나왔다. 그래도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는데, 일반 고등학교에 나온 동창 친구들과 대화를 해보면 씁쓸해 진다. 너는 대학을 갈 거냐고 물어보면 어이없다는 듯 ‘당연히 가야지.’ 한다. 그리고 또 내가 그럼 너는 무슨 전공을 생각 하느냐고 물어보면 ‘점수 맞춰서 가야지.’ 한다. 나도 그 말에 일정부분 동의한다. 이 사회는 이미 올바르지 못한 교육을 하게끔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선택은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사실 나도 그런 훌륭한 교육을 하는 고등학교에서 공부했지만 생각없이 당연히 대학에 가려 했고, 전공을 선택하지 못해 점수에 맞춰서 대학을 갔다. 그러나 생각 없이 갔던 대학에는 내가 없었다. 나는 없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소위 스펙만 있었다. 거기서 괴리감이 생겼고 결국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올바른 가치 기준으로 생각하려 노력했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전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생각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올바른 생각이란 올바른 가치관과 사상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사실 쉬운 것은 아니다. 나도 아직 어떤 확신을 하고 결정을 내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런 올바른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평생을 통해 알아가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리고 작가는 그런 올바른 생각 위에 디자인된 결과가 공공디자인이라 말하고 있다. 핀란드가 디자인 강국이 된 이유도 올바른 인성교육의 결과라 생각한다. 그것은 올바른 교육을 하게끔 하는 사회가 디자인되어 있다는 것이고 핀란드사람들의 정체성이 그러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나라는 왜 이런 교육 못하는 것일까. 점점 변해가고는 있지만, 아직 멀었다. 핀란드의 교육은 경쟁 관계를 통해 이뤄낸 결과를 경멸하고 서로 협력관계를 통해 가르친다고 한다. 그 결과 학생들의 수준이 읽기와 수학, 과학 분야에서 세계적 최고가 되었다. 올바른 생각의 결과다. 디자인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디자이너는 기한에 맞추기도 어려운 형편이기에 많은 생각이 담기지 않은 디자인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인 ‘빨리빨리’ 때문이라 생각한다. 무엇이든 빨리빨리 하려는 특성 때문에 생각이 없다. 천천히 만든다는 것은 느긋하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많은 생각을 통해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생각 또한 디자인에 있어서 하나의 유기적 활동이며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일텐데, 그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생각한다는 것은 숨을 쉬는 것과 같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활동인데, 그것을 일부로 해야 한다는 것도 웃긴 이야기다. 그만큼 생각하는 것에 길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생각도 자꾸 해야 느는 것이고 할수록 깊어진다. 그렇기에 나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역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군 복무 중 그림을 그리고 그에 대한 생각 쓰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된 하나의 생각 위에 그림을 그리게 되면 그 그림은 쉽고 재밌게 그려진다. 사람들에게 아무 생각 없이 그린 그림과 생각이 담긴 그림 둘을 보여주면 생각이 담긴 그림이 더 좋다 한다. 사람은 그림이라는 2차원적인 형상을 통해서도 무언가를 느끼는 것 같다.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생각이 담겨있지 않다는 것이다. 미술 작품 중에는 초등학생이 그린 것보다 못한 그림이 많다. 그러나 그것이 가치가 있는 것은 거기에 생각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아무리 잘된 것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창의성이란 무엇일까. 발상의 전환이란 무엇일까. 모두 생각과 관련된 말이다. 창의성이란 완벽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생각이 쌓여 그 속에 진정한 의미를 찾아내는 것으로 생각한다. 발상의 전환이란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인데, 새로운 시각을 갖기 위해선 많은 생각이 필요할 것이다. 디자인은 결국 생각의 표현이고 생각을 형상화한 활동이라 본다. 이것이 평소 나의 생각이고 이 책을 읽고 이해한 결과다.
나는 과연 무엇을 하기 위해 디자인을 하려 하는 것일까. 앞서 말했듯이 단순히 나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서 선택했다. 그럼 무엇을 하고 싶어서일까. 공공디자인이라는 책을 읽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나는 무엇이 되려 하는 것일까. 아직 답은 모르겠다. 그러나 포괄적으로 접근해 보았을때 공공디자인이 나의 목표인 것은 확실하다. 디자인은 소수를 위한 활동이 아니라 다수를 위한 활동이며 거기에는 그 사람들에 대한 깊은 생각을 통해 나온 배려가 담겨있어야 한다. 이것으로 사회가 발전하게 되고 나는 거기에 이바지하게 된다. 그 보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전부다. 이것이 전부다. 나는 아직 생각이 완성되지 못했기에 위와 같은 수준의 목표밖에 설정하지 못한다. 그리고 양요나라는 사람은 이 책에서 거기까지는 얘기하지 않는다. 그저 공공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늘어놨을 뿐이다.
“뭐 그렇게까지 설명할 필요가 있느냐. 제목과 주제가 공공디자인이니 그것만 설명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에서 생각이라는 부분을 다루고 있는 만큼 이 부분을 넘어갈 수가 없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여기서 올바른 생각을 말했다면 분명 그 올바른 생각의 정점은 그 생각으로 무엇하기를 원하느냐일 것이다. 최종 목표가 없는 생각은 일관적이지 못할 것이기에 그 생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공디자인에서는 그 내용이 없다. 그래서 마치 뭔가 가장 중요한 하나를 빼먹은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처음 부분에 말했듯이 글이 너무 주관적이고 우리나라 디자인에 대해 비관적이다. 이 사람도 우리나라 디자인에 대한 안타까움에 그렇게 썼을 수는 있다. 그러나 마치 친일파가 일본을 찬양하듯 핀란드를 찬양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핀란드도 하나의 사회고 분명한 사실은 이 세상에 완벽한 사회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도 그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도 편협한 글을 썼을까. 핀란드의 장점과 우리나라의 단점만을 표현했다. 이는 분명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함일 것이다. 분명 우리나라도 좋은 민족성과 그에 따른 생각이 있다. 좋은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작가는 우리나라의 긍정적인 부분을 보며 이렇게 책을 썼을 것이다. 가능성이 있으니까. 더 좋아질 충분한 요건을 갖추고 있으니까.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외국인을 보며 생각한 것이 있다. 보면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진국 사람이라면 무조건 높이 보며 부러워한다. 반면에 비교적 후진국에 속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외국인과 같이 다니면 마치 뭐라도 된 듯 의기양양하며, 외국인 노동자나 후진국 사람들과는 친해지려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자존감이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자존감이 엄청나다. 선진국이 선진국인 이유는 돈이 많기 때문이 아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돈이 없어도 당당하며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프랑스도 그 당당함으로 그들만의 예술과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만의 문화를 잃어가고 있다. 자존감 없이 그저 외국의 멋진 문화(디자인)를 보면 그것에 담긴 생각을 무시하고 그저 도입하기 바쁘다. 그 문화가 멋진 이유는 그 속에 담긴 생각이 좋기 때문이라는 것을 무시한 채로 말이다. 외형적인 것을 가져오기 전에 담긴 생각을 배우고 그것을 우리나라 문화에 맞게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생각이란 무한히 응용할 수 있기에 배움이란 나쁜 것이 아니다. 나쁜 것은 생각 없이 외국 문화를 무작정 들여오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나를 비롯한- 좀 더 자존감을 가지고 후진국이든 선진국이든 좋은 생각을 더욱 많이 가져와 생각이 풍부한 나라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공공디자인이라는 책이 좋은 이유는 디자인하기 위한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그중 몇 가지 정말 맘에 와 닿는 말들이 있다. “생각이 모자라면 모르는 것을 아는 양 말하게 된다.”에서 나는 내가 말이나 그림을 어렵게 그리는 이유를 알게 되었고, “공공디자인은 디자인의 철학적 바탕이다.”에서는 책을 읽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디자인은 만든 사람 스스로 좋아해야만 다른 사람에게도 좋아하는 대상이 된다.” 에서는 디자인은 느낌의 전달이며 소통이 목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공공디자인의 효율성은 인간을 얼마나 긍정적인 상태로 만들어놓느냐 이지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것을 채울 것인지가 아니다.”에선 공공디자인의 주목적이 인간의 긍정적인 사고를 위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많은 사람의 마음을 한 사람(디자이너)이 받아들여 현실로 만든다.” 디자인은 생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대중적인 생각을 공감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우월하다는 생각은 생각의 멈춤을 만들어버린다.”에서는 겸손 또한 올바른 디자이너가 되는 데 필요한 하나의 미덕이라는 것을 알았다.
핀란드에 다녀온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거기를 어떻게 가서 어떻게 돌아왔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아까 말했듯이 이 책은 기행문이지만 작가의 생각이 많이 담겨있다. 그 생각들은 내가 배우기에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고,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디자이너로서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이토록 중요한 것이었다는 것이 충격이었고 분명 이것 외에도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엄청나게 많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충격이다. 작가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이런 글을 썼다면 성공한 것이다. 최소한 나에게만큼은.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디자이너가 되기로 마음먹었으니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부모님이나 누나로부터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을 질리도록 들어왔다. 그 덕분에 그나마 책을 조금 읽기는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모든 것에는 기회비용이 있다. 그러면 나는 시간 활용을 잘해야 하는데, 아직 배우는 처지인 내가 중점적으로 투자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일까. 물론 책을 읽는 것도 있겠고, 눈을 키우기 위해 많이 보러 다니는 것도 있겠다. 그리고 기술을 배워 좀 더 쉽게 툴을 이용할 수도 있어야겠다. 내가 주로 해야 되는 이 것 왜에도 다른 무엇이 더 있는지 궁금하다. 양요나라는 분은 우리가 빼먹고 있던 생각이라는 부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도 분명 뭔가 빼먹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완벽함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은 하고 싶다. 최소한이 만족되지 않는다면 공공디자인을 할 수가 없을 것만 같다. 앞으로 계속 고민하고 찾아야 할 부분이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정말 재밌는 것 같다. 마치 모든 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고. 그래서 누군가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다.” 라는 말을 한 것 같다. 나도 그 일원으로서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공공디자인을 이루어 내고 싶다.